뭐 그런게 있다. 매우 점잖고 고지식한 어떤 사람이 알고보니 어린 시절엔 천둥벌거숭이같이 까부는 아이였다는 이야기. 신기한게 어린시절의 어떤 특성들은 스스로 그러했었는지 기억지 못하고 증발해버린다. 작가 편혜영도 그렇다. 분명 ‘아오이 가든 이나 ‘재와 빨강’ 시절만 해도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질척이며 쏟아져나와 우리를 적셔버렸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다른 포지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비교적 근작인 단편 ‘술과 농담’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 작품이 초기작이고 시간이 흘러 ‘재와 빨강’ 그리고 ‘아오이 가든’에 당도했다는 식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작가의 시간은 반대로 흐르는 걸까? 평범한 소시민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점차 문명을 벗어던지는 스토리가 아니라 반대로 문명사회에 원시인이 떨어져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시간이 흐르며 현대인의 시선으로 원시를 바라본다고나 할까. 이걸 성장이라 할지 변신이라 할지 모르겠다. 암튼. 가끔 어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해가곤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이미 그 과정이 끝나있고 끊임없이 다른 정원들을 넘나들기도 한다. 사실 편혜영 작가를 좋아하게 된 건 38회 이상문학상 작품인 몬순 때문이다. 짧은 글 임에도 뜨겁고 컴컴한 늪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느낌들. 마치 레이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같달까. 끌로드 를르슈의 ‘남과 여’ 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처럼. 밤은 캄캄하고 앞은 보이지 않고 그러나 그 안은 활활 타오르고. 이런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