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 – It never entered my mind

한 십수 년 전, 그러니깐 911 테러가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뉴욕으로 보름쯤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911 광장의 새 건물이 완공되지 않았던걸 보면 사건이 터지고 그리 오래되진 않았던 때 같다. 몇군데 일부러 돌아다닌걸 제외하면 거기서도 별로 열심히 관광을 다니진 않았고 맨날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빈둥빈둥 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컬럼버스서클 근처였던터라 늦잠 자고 일어나서 근처 링컨센터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오후영화를 보고 밤에는 타임아웃뉴욕에 나온 당일 라이브하는 재즈바에 찾아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공연을 보다 새벽에 숙소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인기 있는 재즈라이브 공연은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했고 나처럼 당일 예약을 하는 관광객은 인기공연 예약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찾아가게 되는 곳은 대부분 변두리 건물 지하 구석 초라하게 좁다랗게 만들어진 곳들이었다. 암튼 그날도 늦게 끝난 영화를 마무리하고 허기를 달랜 후 마음먹은 재즈바로 들어갔다. 라이브를 방금 막 시작하고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거기 모인 사람의 전부였다. 내가 들어가니 모두들 날 바라보는데 왠지 당황스러웠다.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순간 들어가지 말까 하다 그냥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 그 곳에서 연주되고 있던 곡은 내가 좋아하는 It never entered my mind 였다. 떠나간 연인을 추억하며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자조하는 곡. 1940년대 로저스와 하트의 뮤지컬인 하이어하이어에 나왔던 곡인데 수많은 재즈연주자들이 리메이크를 한 명곡이다. 나 같은 경우는 마일즈 데이비스나 쳇베이커, 줄리 런던 같은 스타일의 연주만 주로 들었는데 당시 거기서 연주되던 곡은 키스 자렛의 편곡 같은 곡이었다. 중간부터 듣은데다 워낙에 딜레탕트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던지라 무슨 곡인가 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 이곡이 이곡이었구나’ 하고 깨닳았을 때의 짜릿함. 지적이고 예민한 스타일의 연주. 내 스타일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뉴욕에서 들렀던 여러 재즈바에서의 많은 곡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게 뭐 연주가 좋아서였던건지 아니면 그 몇명 없고 비좁고 담배연기가 가득찼던 그 곳의 분위기가 좋아서였던건지 모르겠다. 한 이십년전 우리나라에 처음 재즈바 열풍이 몰아닥칠 때 여기저기 라이브 공연을 하는 재즈바가 우후죽순 생기고 라이브연주도 꽤나 많았던게 생각난다. 요즘은 다들 어디로 간건지 모르겠다. 이런걸 주변 어디에서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