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기사를 통해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가장 빠른 기사가 한 시간 전에 속보로 나왔고, 가디언의 기사는 30분 전에 나왔다. 기사는 그의 출생부터 1960년대 첫 작품 ‘네멋대로해라’를 거쳐 2018년 ‘이미지북’까지를 다루고 있다. 준비해둔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요 일간지에서 이렇게 한 분야에 대해 단시간에 정리해서 기사를 송고할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우리나라 뉴스들은 대부분 연합뉴스 복사 붙이기 아니면 외신의 구글번역인 경우가 많다. 왜 우린 그렇게 못하나 하고 아쉬울 때가 많다.
고다르 하면 나의 철없고 정신없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내 대학교 신입생시절 그러니깐 90년대 중반쯤에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책이 인기가 있었다. 김홍준 감독이 고다르의 영화제목을 본떠 구회영라는 가명으로 낸 책이었는데 당시 진지한 아마추어들의 필독서였다. 그 때 고다르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듯 하다. 그 때만 해도 종일 하는 일이란 음악 듣고 술 마시고 영화 보는 게 전부였다. 예전에 범일동 블루스의 김희진 감독이 진행하는 영화사 수업에서 고다르의 첫 영화 ‘네멋대로해라’의 첫 시퀀스가 주인공이 마르세유를 떠나면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의미와 누벨바그에 대한 설명을 듣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영화를 참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암튼 그의 초기작은 비교적 잘 이해되는 편인데, 60년대 중반에 들어서 ‘메이드인 USA’,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주말’ 등을 거치며 그의 영화는 점점 정치적이 되어갔고 테크닉적으로도 난해해졌다. 그리곤 80년대 작품인 ‘미녀갱 카르맨’ 즈음부터는 영화에서 음악, 카메라, 서사를 분해하고 각자 따로 앙상블을 만들어 놀게 하는 등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한 현대미술 탐구란 생각이 들게 바뀌었다. 이후로 그는 대중과는 좀 멀어진 듯하다. 하지만 90년대 ‘누벨바그’, ‘포에버 모차르트’ 같은 작품으로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예전에 진만이형이랑 아녜스 바르다의 유작 ‘아네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본 기억이 난다. 죽음이 가득 찬 영화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를 가득 담은 영화였다. 영화 마지막 즈음 바르다는 스위스의 호숫가에 있는 고다르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만나지 못하고 아쉬워한다. 그 쇼트가 유독 기억에 남아있다. 언젠가 서울시네마떼끄에서 그의 회고전을 대대적으로 다시하길 바란다. 나의 스무살 시절로 돌아가 밤새 그의 영화를 탐독하고 싶다. 시간이 흐르니 내가 사랑하는 감독들이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반면 영화를 예전처럼 많이 안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감독들이 이제는 잘 없다. 뭔가 잘 채워놓은 곳간이 점점 줄어들고 그럴수록 희미해져가는 것들을 힘주어 움켜잡고 있는 그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