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담비 감독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 제목을 듣고 문득 허우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이 연상되었는데. 전반적 분위기는 달랐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재개발 아파트에서 밀려난 이혼한 아버지와 남매가 할아버지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집을 옮기며 일어나는 여름 한 때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남매 또는 여름밤 이라는 단어가 주는 내러티브 보다는 섬세하게 연출한 조명이 더 눈에 들어왔다. 왠지 허우샤오시엔의 오랜 파트너였던 촬영감독 마크 리 핑빙이 연상되는 화면들 말이다. 보통 영화조명을 처음 배울 때 텍스트북에서는 필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빛조건에서 빛을 빼서 화면을 채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마크 리 핑빙의 화면들은 반대로 텅빈 공간에 햇살을 더한 듯이 프레임을 구성하는데 덕분에 그가 연출한 영화에서는 낮시간의 나른한 듯한 공기감과 공간감이 잘 느껴진다. ‘남매의 여름밤’에서는 제목처럼 사실 낮의 화면 보다는 밤의 시간들이 훨씬 더 많이 연출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이야기’ 처럼 무겁지 않게 다가오는 까닭은 역시나 공들인 낮의 장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대략 영화가 시작되고 35분에서 36분깨 등장한다. 카메라는 시계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준 뒤 캄캄한 방에 누워 잠들어있는 할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비춘다. 이후 거실에서 잠든 아이와 의자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투쇼트로 잡은 뒤 다시 아버지를 미디엄쇼트로 5-6초간 보여주는데 이때 조명이 아주 살짝 바뀐다. 무언가 생각난다는 표정으로 아버지의 시선이 할아버지를 향하자 잠들어있는 할아버지의 방안으로 슬며시 빛이 들어온다. 카메라는 다시 아버지를 비추고 다시 아이로 이동한다. 그리고나선 다시 아이와 아버지를 투쇼트로 잡아주는데 아버지는 무언가 깨닳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깨운다. 30초 남짓한 시간에 펼쳐지는 이 시퀀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이로 이어지는 3대의 시간을 압축해서 마치 꿈인것 처럼 보여준다. 정말로 놀랍고 아름다운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