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의 1935년작 동경여관.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이기도 하다. 두 아들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주인공 키하치가 우연히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딸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찰나 찾아온 비극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영오즈의 이전 무성영화에서는 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만은 시각적 요소와는 별개로 음악이 내내 사용된다. 영화에서는 기이한 장면이 몇번 등장하는데 그럴 때면 음악이 삭제된다. 그리고 이 때 우린 시공간이 달라진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영화의 매트릭스 속에 위치해있다가 어느 순간 그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의 외형을 바깥에서 보게 되는 경험. 그래서 딸 아이의 죽음 이후 갑자기 사라진 여자가 다시 등장할 때 문득 이건 현존하는 실체로서의 그녀가 아니라 폐망한 일본의 원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35년이면 만주사변 끝나고 중일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즈음인데. 그 잘나가던 일본도 속을 들여다보면 황량하기 그지 없다.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맘마로마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암튼 로마나 동경이나 도시의 뒷모습은 닮아있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하나 재미난 점은 여주인공으로 당시의 톱배우였던 오카다 요시코가 나온다는거다. 오즈의 영화에는 2년전 동경의 여자라는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여러모로 다들 아는 하라 세츠코를 닮아있는 여자. 아쉽게도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환멸을 느끼던 그녀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일본 공산당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사할린으로 향했는데 우여곡절끝에 남편은 사형에 처해지고 그녀는 10년간의 노동교화형을 받은 후 소련에 남게 된다. 훗날 복권되어 잠시 일본으로 귀국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스크바로 돌아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녀가 소련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오즈의 작품들에 그녀가 계속 출연했을까 상상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