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음악잡지 객석에서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 30년도 더 전 기억이라 그게 줄리안 브림의 이야기였는지 다른 기타리스트의 이야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그는 어린시절부터 세고비아의 후원을 받았고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그가 50세 때 즈음이었나 스포츠카를 몰고 과속을 하다 사고가 발생했고 크게 다친 그는 연주를 그만두고 은퇴를 하고 만다. 그렇게 스페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머리를 이발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 동네 청년이 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하지만 들어주기에 영 엉망이었던 연주를 듣던 그는 그자리에서 일어나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금 연주를 시작했다고한다. 그 때 그 음악을 듣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무튼 이후 활발한 음악생활을 다시 시작해 우리의 귀을 즐겁게 해주었고. 작년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RCA에서 나온 이 음반은 93년에 발매되었는데 실제 녹음은 59년에 이루어졌다. 다들 이 곡을 연주할 때 서정적으로 연주하곤 하는데 담담한 그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그는 라벨을 연주하는게 아니라 그 자신을 연주하는 듯 보인다.
쇼스타코비치 – Symphony no. 5 conducted by Mariss Jansons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주 들었던 곡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일꺼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찮게 누나가 보던 전혜린의 수필집을 보게 되었고 그녀의 책속에 나오는 모든 책들, 영화들, 음악들을 다 보았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산물들이 다 그 책 속에서 나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녀의 글에 헤르만 헤세에게 엽서 받은 이야기가 나와서 그의 책을 다 보고 페터 한트케나 토마스 만의 소설 이야기가 나와서 그들의 책을 다 보고 뭐 이런 식이랄까. 그러다 그녀의 책 속에 나온 곡 중 하나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었다. 때 마침 집에서 엄마가 정기구독하던 객석이라는 음악잡지에 쇼스타코비치 특집이 실렸었는데 열심히 읽고 또 읽고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은 뭐랄까 무슨 스릴러 영화에서 적들에게 쫓겨서 도망치다 강물속으로 몸을 던진 주인공이 추적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 위로 길다란 빨대를 뽑아 올리고 숨을 참으며 버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빨대 하나에 의지해 숨을 유지하는 그 1초 1초의 압박감과 답답함. 신경질적인 섬세함을 느끼게 해주는데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우연찮게 그 때 구입한 시디가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EMI 앨범이었다. 오슬로 필하모니의 연주였는데 그가 훗날 더 거장이 되기 전에 초창기에 지휘한 앨범이었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녹음이 나오긴 하는데 EMI가 아니라 워너 음반으로 나온다. 어케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시 들어도 너무 좋다.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 오랜만에 듣는데도 모든 악기의 모든 음표 하나하나가 다 귀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