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미국의 소설가 조안 그린버그는 1967년 한나 그린이라는 필명으로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라는 자전적 소설을 발표한다. 소설의 내용은 매릴랜드의 정신병원 Chestnut lodge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았던 한 환자의 경험담인데, 주인공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조현병이 아니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신체화장애라고 다시 진단받게 된다. 당시 정신과학에서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조현병이 생물학적인 질환인가 부적절한 양육에 의한 결과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직 생물학적 정신과학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기 이전이고 약물치료에 의한 반응을 살필 기회도 없었으니 진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소설 속 주치의는 당시 병원의 실제 정신과의사였던 Fromm-Reichmann인데 그녀는 조현병은 부적절한 양육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믿는 신봉자였다. 덕분에 더더욱 올바른 진단이 쉽지 않았으리라. 실제로 Chestnut lodge는 다른 병원들에 비해 항정신병약물 사용이 늦었다고 하고 이 문제는 훗날 초발정신증 분야의 스타 연구자 중 하나인 Thomas McGlashan이 이 병원에서의 수십년간의 치료기록을 검토하며 조현병의 심리치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일갈하고 나서야 비로소 해결이 된다. 사실 현대 정신의학에서 조현병 진단이라는게 다른 임상의학에 비교하자면 여전히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은데 당시의 허술한 진단기준으로 얼마나 잘 진단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긴하다. 암튼 소설은 1960년대 정신과학의 수준과 사회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요즈음의 정신과학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바로 뉴욕포스트의 작가인 수잔나 칼할란이 2012년에 발표한 Brain on Fire: My Month of Madness가 바로 그것인데 이 분은 2016년 피렌체에서 열렸던 조현병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한적도 있다. 난 당시 이런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고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이 소설이 영화로 나오고 나서야 그 때 그 사람이 이 작가란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앞에 말한 소설 보다 좀 더 재미난게 바로 NMDA receptor autoimmune encephalititis에 걸려 조현병으로 오진을 받은 환자를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현병이 글루타메이트 가설을 조금만 떠올려본다면 이 작품이 주는 스토리의 흥미진진함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현병이란게 과거에는 도파민 관련 질환으로 알려졌지만 오늘날에는 대뇌 피라밋 세포의 NMDA 수용체의 결함이 결과적으로 가바 시스템의 이상을 일으키고 도파민 과잉분비는 단지 그 결과물에 지나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신경과 선생님들과 함께 이 질환에 대한 MRS + PET 연구를 함께 해보고 싶은데 이게 될지 모르겠다. 암튼 오늘 낮에 카메라 필름을 몇개 구입하러 충무로에 나갔다가 돌아오는길에 다시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점 코너를 왔다갔다 하다가 정신질환쪽 코너에 보니깐 제법 질환별로 구색을 갖추어간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유독 조현병 분야의 책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 존 파워스의 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 My Family and the Heartbreak of Mental Illness in America를 번역한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정도이다. 아무래도 조현병이 좀 더 드러내기 쉽지 않은 병이라서일까? 여력만 있으면 Fuller Torrey 처럼 조현병 가족들을 위한 조현병 안내서를 한번 써보고 싶은데 할 일도 많고 그런데에 손을 뻗을 시간이 없다. 미국 B급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졌으면 한 일년 멈춰놓고 책이나 한권 써봐도 좋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