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

우리에게는 북악산이라는 이름이 좀 더 친숙한데 원래 이름은 백악산이라한다. 9월부터는 하절기가 끝나 청와대옆 칠궁쪽 입구는 오후 4시부터 통제를 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창의문쪽에서 접근. 트레일러닝을 한다고 올랐는데 뛰기는 커녕 걸었던 구간이 훨씬 더 많았던 듯 하다. 이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더라. 그래도 백악마루도 올라보고 청운대도 오르니 말로만 듣던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바깥에서 볼 때는 백악산이 그리 높은 산도 아니고 조그맣게 보였는데 막상 산에 오르니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매우 조그맣게 보인다. 재미난 경험.

 

달리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빨리 달리기 보다는 오래 달리기에 관심이 생겼는데 달리기와 관련한 여러 글을 보다보니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느리게 달리는게 중요하다고 한다. 최대 심박수에서 70% 정도의 강도로. 이른바 존2 라고 불리우는 구간을 유지하면서 달리라는거. 그런데 러닝을 좀 하던 사람들이야 가볍게 조깅을 하는 정도로 충분할텐데 나 같이 평소 운동을 안하던 사람이 그 정도 강도만 유지하려니 달리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지나치게 느린 속도가 나와버리더라. 아무튼. 이리 지속하다보면 몸이 좀 더 건강해지려나.

석종

석종

서울 마포구 동교로27길 3-14 1층

010-3982-9525

조용하고 우아한 집. 홍대 뒷골목에 작은 단독에 위치하고 있는데 메인홀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좌석은 몇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쉐프분이나 집의 인테리어나 심지어 맛까지. 하모니가 있는 집이다. 스시들이 나올 때 마다 하나하나가 너무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톤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생선들마다 발효 기간을 조금씩 달리해서 모든 스시들이 입안에서는 비슷한 정도의 식감을 보여주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재미난 경험이었다. 전체 코스 중 최고는 고등어. 단 하나만 나온다는게 어찌나 아쉽던지.

가미고치

가미고치를 대중교통을 통해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마쓰모토에서 신시마시마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타카야마에서 히라유온센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물론 드물지만 다른 더 먼도시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eg. 도쿄 신주쿠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가미고치는 개인 자가용이나 렌트카 접근은 안되며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한 분들은 모두 사완도 터미널이나 히라유 터미널에 주차를 해두고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아래는 마쓰모토에서 가미고치로 들어가는 버스 시간표이다. 마지막 떠나는 교통편이 3시반 이전에 끝나므로 애매하게 오후에 마쓰모토에 오면 자칫 당일 가미고치에 가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시간표를 잘 확인해야한다. 이 지역은 신호타카 로프웨이 그리고 노리쿠라산 등 관광지가 많은 편이라 교통편이 제각각이라 방향을 잘 체크해야한다.

가미고치로 들어가는 버스는 타이쇼호수 부근에서 잠시 정차를 하고 목적지인 가미고치 버스 터미널로 직행한다. 터미널에서 가미고치의 중심이 되는 갓파바시 까지는 5-10분이면 당도할 거리이지만 이 지역은 모두 비포장길이니 혹시라도 캐리어를 끌고 왔다면 운반하기가 편하지는 않다. 등산을 하지 않고 단순 하이킹만 한다면 가미고치는 크게 타이쇼호수에서 갓파바시까지, 갓파바시에서 묘진산장과 묘진호수까지, 그리고 묘진산장에서 도쿠사와까지, 그리고 도쿠사와에서 요오코 산장까지 크게 4지역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타이쇼 호수에서 요오코까지는 매우 완만한 오르막인데 거의 평지라 볼 수 있고 다만 돌아올 때는 한결 더 편하게 올 수 있다. 요오코 산장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으나 오후 3시경에 식사는 더이상 제공하지 않으니 늦게 도착한다면 식사는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묘진 호수의 경우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오후 5시경 문을 닫기 때문에 오후 늦게 들어오면 입장이 어렵다. 갓바바시 양쪽으로 있는 롯지에서는 1층 레스토랑이나 샵에서 식사도 제공하고 등산용품이나 기념품을 구입할수도 있다. 또한 도쿠사와 산장의 경우도 오후 늦게까지 식사를 제공하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도쿠사와나 요오쿠에서 동쪽으로 있는 조가다케로 올라가는 산길이 있다. 이 곳은 일본 알프스를 마주보는 매우 조망이 좋은 산이나 경사가 심해 난이도가 제법 높은 산이다. 요오코에서는 일본 알프스의 핵심인 호타카다케로 오르는 유명한 등산길이 있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이 등산로 중 중간에 있는 가라사와 산장 까지는 전문적인 등반장비가 없더라도 누구라도 시간만 들이면 오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산장에서 숙박도 가능하며 산장 주변에는 많은 백패커들이 텐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미고치에서 타이쇼 호수에서 요오코 까지는 누구나 편하게 하이킹 할 수 있는 지역이라 보면 되고 요오코에서 가라사와 산장 까지는 우리나라의 등산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이상은 제대로 준비하고 올라야하는 본격적인 등반지역이라 보면 된다.

  

락 블랑

몽블랑산의 맞은편에 있는 브레방 전망대는 거대한 몽블랑을 마주볼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 단순히 몽블랑만 바라보지 말고 산맥을 따라 하이킹을 하면 뚜르드몽드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라 플레제르 산장을 거쳐 락 블랑 호수에 당도하는 멋진 루트를 걸을 수 있다. 이 루트가 너무 길다고 여겨지면 샤모니에서 1번 버스를 타고 10분쯤 이동하면 당도하는 레 프라즈 마을에서 케이블카를 통해 바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산으로 오르면 1894미터 높이의 플레제르 산장에서 몽블랑을 조망할 수 있다. 또, 여기서 체어 리프트를 타고 2397미터 높이의 인덱스까지 올라가 하이킹을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덱스에서 락블랑으로 가는 루트는 여름이 아니라면 얼음이 채 녹지 않아 살짝 위험한 구간이 있을 수 도 있으나, 완만하게 내려가는 코스라 초심자라도 편안하게 4시간이면 왕복을 할 수 있다.

 

 

스파카나폴리

스파카나폴리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28 2층

02-326-2323

한 입 먹는 순간 사로잡히고 말았다. 피자를 이렇게 프레시하게 만들다니. 맛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냥 집에서 먹는 백반 같은 자연스러운 맛이다. 한 껏 멀리서 찾아가서 오랜시간 기다려 먹는 맛으로는 이게 뭐냐 그냥 평범하잖아 할지 모르겠으나,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는 주식으로서의 피자라는 점에서본질에 충실했다. 암튼 토마토를 어찌 이리 신선하게 잘 뽑았을까 궁금하다. 또, 도우도 올리브유를 바른 듯한 맛임에도 부푼 모양이나 색을 보면 또 아닌 것 같고. 암튼 조리법이 궁금해지는 피자였다.

안라쿠지, 우에노

신칸센에 지나는 우에다역에서 작은 사철인 벳쇼선을 타면 30분 정도 걸려 시내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종점의 무인역 벳쇼온센역에 도착한다. 이 벳쇼온천은 나가노현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고 일본 서기에도 등장할 정도인데 나라시대에서 헤이안시대 넘어가는 시기 즈음 형성되었다고 알려져있다. 지금은 쇠락한 낡은 온천 마을이지만 이 지역에는 놓치면 안될 중요한 국보 목탑과 중요문화재 건축물이 여럿있다. 아무튼 이 벳쇼온천지역에서 꼭 들러야하는 곳 하나를 꼽자면 바로 일본 유일의 팔각삼층목탑이 있는 안라쿠지라는 절. 천장에서 기단까지 18미터가 넘는 이 목탑은 1290년 무렵. 가마쿠라 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수백년이 넘는 시간 비와 눈을 맞으면서 현재까지 멋지게 서 있는 목탑의 모습은 숭고하기 그지 없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 올 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꽃의왈츠를 집필했다던 린센로 카시와야 벳소 료칸에 묵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문을 닫아 이용할 수 없었다. 대신, 하나야라는 대형 료칸에 묶었는데 료칸 전체가 문화재처럼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흔한 관광지는 아니고 우리가 갔을 때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은 다소 을시년스런 분위기였음에도 마을이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와 고풍스러운 느낌이 참 좋았다.

마르모레 폭포, 테르니

움브리아주는 로마에서 피렌체로 올라가는 길 중간 즈음에 위치한 내륙지역인데 그래서인지 주의 이름도 배꼽의 어원을 따서 지은 것이 재미있다. 이 곳은 수만년전 화산과 함께 형성된 지질학적 이상의 영향으로 침식작용에서 살아남은 산 위에 형성된 작은 마을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로마에서 북쪽으로 차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관문역할을 하는 도시 오르떼에 당도하는데 이전만 해도 평지이던 주변 풍경이 갑자기 산위에 형성된 도시들로 황홀해진다. 여기서 조금 더 동쪽으로 달리면 테르니에 당도하는데 여기에는 마르모레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폭포가 하나 있다. 이 폭포는 고대 로마시대에 이곳을 지나던 벨리노강의 물들이 저지대로 흡수되며 말라리아등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반복되자 서기 271년 집정관 만리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가 물길을 돌려 서쪽 마르모레 쪽 절벽으로 흐르게 하였고 이것이 폭포의 시작이 되었다. 원래의 폭포의 규모는 모르겠으나 현재는 인공수로 수력발전과 함께 관광객을 위해 특정시간에만 개방하여 폭포물을 흘려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높이가 총 165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폭포이다. 폭포의 북쪽에 위치한 입구에서 보면 정말 시원할 정도의 장관인데 폭포를 위에서 보려면 걸어올라야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버스나 차를 타고 산을 빙 돌아서 올라가면 폭포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장관이라 꼭 높치지 않았으면 한다. 주변은 모두 평화로운 공원인데 가족단위로 모인 사람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게 마냥 좋아 보이더라.

Toshinobu Kubota – La La La Love Song song by 백예린

백예린이 부른 la la la love song. 다들 잘 아는 키무라 타쿠라 주연의 1996년 작품인 롱 베케이션의 ost로 삽입되었었던 곡이다. 그런데 나는 원곡보다 백예린이 부른 이 곡이 열배는 더 좋더라. 그리고 그땐 모르고 드라마를 봤는데 다시 보니 마츠 다카코도 나오고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나오고 히로수에 료코도 나온다. 근데.. 분명 재밌는데 그보다 더 눈에 띄는 뭔가 촌스러운 느낌. 분명 당시엔 엄청 트랜디함의 절정의 작품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드라마와 비교도 안되게 일본 드라마가 멋지던 시절) 이제는 정반대의 느낌이 드는거다. 올초에 봤던 이와이 순지의 4월 이야기도 똑같은 느낌이더라. 20대 초반에 볼 때는 멋지게 봤는데 다시 보니 촌스러운. 가끔 80년대에 방영되던 KBS TV문학관 같은거 볼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검증된 좋은 스크립트임에도 그 보다는 옛날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사이즈에 맞춘 화면 프레임이 더 촌스럽게 보여진다. 와이드 스크린에 익숙해지다보니 그렇지 않은건 엄청 고루하게 느껴지는 현상. 도대체 촌스럽단건 뭘까? 새로운 자극에 오래 노출됨으로서 이에 대한 방어로 생겨나는 뇌의 생리적인 현상인걸까? 아예 오래되어 버리면 그러니깐 50-60년대.. 그건 또 아예 새로워보이는데 어정쩡하게 오래되면 그건 아주 진부해보이는거 말이다.

레지나 카터 – I’ll be seeing you

이번 주 내내 반쯤 감기몸살 걸린것 처럼 골골거리면서 보냈다. 백신주사도 안맞았는데 말이다. 분명 머리에 열나는 것 같은데 어디 들어갈때 체온 체크하면 정상이다. 내가 문제인건지 기계가 엉터리인건지. 오늘 저녁에도 머리 멍하고 몸이 으슬한 기운에 이마에 손대보니 열나는거 같은데 저녁에 미팅하면서 회의실 들어갈때 체온계 재보니 35도 나오던데. 뭔가 이상. 암튼 이번 주말은 잠이나 푹자고 밀린 음악이나 들으며 뒹굴거려야겠다. 뉴스를 들으니 이번 그래미 재즈부분에 레지나 카터가 후보로 올랐는데 상을 타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생각나서 다시 꺼내본다. 너무 아름다운 I’ll be seeing you. 니나 시몬 마냥 자기만의 템포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연주한다…

톤티커피

톤티커피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북촌로 6-8

070-8872-1316

아끼는 카페. 많은 카페들이 에스프레소 베이스로 달달하고 맛있는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에스프레소 원액 자체는 진하고 쓴게 뽑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만 먹으면 밸런스가 상실되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에스프레소도 맛있고 그 외 다른 커피음료들도 다 맛있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신기할 뿐이다. 음료에 따라 에스프레소를 따로 뽑는건가? 궁금한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암튼 지금껏 가본 카페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자주 가는 곳이다.

슈베르트 – 현악사중주 C Major, 2nd movement

슈베르트가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즈음 작곡한 현악 5중주.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쓰여서 더욱 유명해졌다. 많은 이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장면들이 이리저리 변주되어 보여지는 걸 보고는 일상의 반복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그건 좀 핀트가 나간 이야기. 마치 누군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 때 그 의도와 마음은 모른채 그저 뱉어진 단어들을 늘어놓고 인생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헛된 시도 같다고나할까. 무언가 있어 보이나 결코 잡을 수 없는 것. 하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영화에는 삶의 모든 순간 어떠한 순간에도 당신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그의 간절한 다짐 그러나 결국엔 놓을 수 밖에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죽음을 앞둔 슈베르트의 마음을 그 역시 느꼈으리라 생각.

Fotoimpex Berlin

 

1992년 설립된 Fotoimpex는 아날로그 사진을 위한 재료를 취급하는 소매점으로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날로그 사진용품점 중 하나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유럽 경제가 몰락하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 회사는 Foma, Fotokemika 같은 동유럽 브랜드를 세계에 소개하고 반대로 미국 사진제품들을 수입하며 독일내에서 입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1년부터는 ADOX 브랜드를 구축하고 2006년 Agfa, Forte 등에서 기계를 구입하며 생산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날 Fotoimpexsms 4000개 이상의 제품을 취급하는 유럽 최고의 아날로그 사진용품 공급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베를린 중심부의 알렉산더 광장에서 Weinmeisterstraße 역 쪽으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금새 도착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베를린에 있다면 한번쯤 들러볼만 하다.

필름으로 사진찍기에 관하여

처음 사진을 배울 때는 당연히 사진은 필름으로 찍는 것이었다. 다 떨어진 조악한 일본 번역판 흑백사진 서적을 보고 암실에서 또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암백을 구비하고 현상약품을 사다가 현상을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안셀 아담스의 존시스템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했고 원하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노출을 위하여 스팟측광을 어떻게 해야할지 계산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전자동 SLR 카메라가 아닌 니콘 FM2 바디 또는 미놀타 X300 을 중고로 구입하여 사용하곤 했다. 올림푸스 PEN EE 같은 것은 조금 덜 진지한 카메라로 여겨졌고 라이카 같은 것은 카메라 샵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카메라였다. 그러다가 200만화소 짜리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 되면서 너도나도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서로간에 디지털이 좋느니 아나로그가 좋느니 따위의 논쟁도 곧잘 벌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다 지난 이야기다. 사진의 헤게모니를 이제는 디지털이 완전히 장악했다. 프로 사진작가들도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맞추기 위하여 다들 디지털을 사용한다. 오히려 요즈음에는 디지털 사진기들 마저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핸드폰에 달려있는 카메라에 주도권을 점차 넘겨주는것 같다. 요즈음 가장 많이 대중화되어있는 사진 사이트인 flickr 이나 500px 같은 사이트에서도 가장 많이 포스팅 되는 기종은 전문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 카메라이니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필름이 더 좋느니 아직 디지털이 이건 부족하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냥 다른 것이다. 영화를 예로들자면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CGV 같은 대형영화체인이 있고 또 한쪽 구석에는 시네마테크서울 같은 전문상영관이 있으며 박스오피스와 연예가중계 같은 대중체널이 있는 반면 칸느영화제와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잡지가 공존하는 것 처럼 말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카메라는 너무너무 성능이 좋아서 뭐라 흠을 잡을데가 없다. 흑백사진 조차도 전문 후보정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교한 필터 작업과 리터칭을 하게 된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제법 필름과 유사한 톤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초대형 인화에서 보여지는 필름의 그레인의 느낌이 어쩌고 따위의 말은 이제는 별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필름은 이제는 소수의 진지한 아마추어들과 애호가들 그리고 옛 향수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 또는 몇몇 고집스런 프로페셔널들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더 필름다운 사진일까를 고민해보게 된다. 콘트라스트가 도드라지는? 선예도가 뛰어난? 계조가 좋은? 입자가 도들아지는? 사실 디지털의 경우도 워낙 후보정이 발달하다보니 디지털 사진도 적어도 모니터 상에서는 무엇이 필름이고 무엇이 디지털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은 정도로까지 발달해있다. 필름을 스캔해서 모니터상에서 보는 것으로는 사실 필름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현상소들이 디지털스캔 디지털인화를 하다보니 스캔본도 그리고 인화본도 예전의 그 맛을 느끼기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손수 현상/인화를 하거나 또는 전문 작가들의 전시회장에서나 제대로 된 프린트를 볼 수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간간히 전시회를 곧잘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몰래 한 두장 정도는 디지털프린트를 했는데 아무도 구분 못하더라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면 아나로그와 필름의 차이란건 우리들의 관념속에서나 존재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된다. 분명 차이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로 구분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란히 펼쳐놓고 누군가 말을 해줄때야 아 그렇구나 하고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면 그런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걸까? 그러니깐 왜 좋냐에 대한 질문에 논리적 답변을 하기가 자못 궁색해진다. 그냥 좋은 것이다. 좋으니깐 모든 것이 다 이유를 가지게 되고 당위를 가지게 된다. 렌즈의 성능을 운운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어도 현상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별 말이 없다. 나는 현상의 정도와 필름의 종류가 사진의 색, 톤, 계조에 미치는 영향이 80이라면 렌즈는 고작 20정도라고 생각을 한다. 디지털 바디에 올드렌즈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나 현대식 비구면렌즈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나 그 차이는 극히 미세해진다. CCD나 CMOS의 특성아래 렌즈의 차이란건 미미해져버리고 만다. 그런 측면에서는 필름현상이야말로 내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니 훨씬 더 재미난 일이 아닌가?

예전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 증감현상을 점차 선호하게 되었다. 증감이란건 그냥 노출이 부족한 시간대에 임시방편으로 하는 수단 같은 것이었다. 400짜리를 증감하는게 입자가 더 좋을까? 3200 짜리를 감광하는게 더 좋을까? 따위의 생각은 말 그대로 증감시 도드라지는 특성을 어떻게 죽여볼까? 하는 고민같은 것이었다. 사진은 delta 100이나 TMX 같은 입자가 고운 필름으로 찍는게 제맛이었고 가장 깔끔하게 보여졌다. Tri-X 나 HP5 같은 필름으로 사진을 즐겨하는 것은 그냥 나 필름입니다를 강조하는 걸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어디에서나 콘트라스트도 빼어나고 샤프하고 깔끔한 영상을 보다보니 이제서야 필름의 톤과 그레인이 주는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증감의 시작은 이런 이유는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레인지파이더 카메라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f/1.4의 조리개 탭을 순식간에 맞추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브레송처럼 구도 정해놓고 한 장소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지 않는한 말이다. 거리사진에서 빠른 순간 포착을 위해서 여러 작가들은 개방이 아닌 심도가 깊은 조리개를 사용했고 또 짧은 셔터타임을 위하여 증감을 했던 것이다. 유명한 f/16의 법칙을 적용해본다면 한낮의 일광하에서 ASA 100짜리 필름이 조리개 f/11 정도에 셔터타임이 1/125라면 ASA 400 필름은 1/500 정도에 대응할 수 있으니 흐린날이나 해질 무렵을 예상해본다면 2스톱 정도는 푸쉬를 해야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에 흐려짐이 없는 셔터타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은 둘째치고라도 미적으로 푸쉬현상을 한 필름의 그레인은 무척 아름답다. 도들도들하게 보이는 필름의 미세한 입자들을 보다보면 세상이 점으로 환원된 것만 같은 착각이 생겨난다. 세상을 바라보는 근원 시각이 컬러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꼭 푸쉬현상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입자를 도드라지게 현상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대형확대에서는 어차피 드러나기 때문에 적절히 그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사진작가 로비 맥킨토쉬가 후지 네오펜400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그레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외 흑백사진 관련 포럼에서 사람들의 사용기를 읽어보면 대부분 그레인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부류 그리고 완전히 그레인을 조밀하게 해서 매끈한 흑백을 선호하는 부류로 나뉘는걸 보곤 한다. 하지만 디지털이 성행하는 요즈음에서는 도리어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쪽이 더 필름다운 맛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키스 자렛 – It never entered my mind

한 십수 년 전, 그러니깐 911 테러가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뉴욕으로 보름쯤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911 광장의 새 건물이 완공되지 않았던걸 보면 사건이 터지고 그리 오래되진 않았던 때 같다. 몇군데 일부러 돌아다닌걸 제외하면 거기서도 별로 열심히 관광을 다니진 않았고 맨날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빈둥빈둥 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컬럼버스서클 근처였던터라 늦잠 자고 일어나서 근처 링컨센터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오후영화를 보고 밤에는 타임아웃뉴욕에 나온 당일 라이브하는 재즈바에 찾아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공연을 보다 새벽에 숙소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인기 있는 재즈라이브 공연은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했고 나처럼 당일 예약을 하는 관광객은 인기공연 예약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찾아가게 되는 곳은 대부분 변두리 건물 지하 구석 초라하게 좁다랗게 만들어진 곳들이었다. 암튼 그날도 늦게 끝난 영화를 마무리하고 허기를 달랜 후 마음먹은 재즈바로 들어갔다. 라이브를 방금 막 시작하고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거기 모인 사람의 전부였다. 내가 들어가니 모두들 날 바라보는데 왠지 당황스러웠다.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순간 들어가지 말까 하다 그냥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 그 곳에서 연주되고 있던 곡은 내가 좋아하는 It never entered my mind 였다. 떠나간 연인을 추억하며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자조하는 곡. 1940년대 로저스와 하트의 뮤지컬인 하이어하이어에 나왔던 곡인데 수많은 재즈연주자들이 리메이크를 한 명곡이다. 나 같은 경우는 마일즈 데이비스나 쳇베이커, 줄리 런던 같은 스타일의 연주만 주로 들었는데 당시 거기서 연주되던 곡은 키스 자렛의 편곡 같은 곡이었다. 중간부터 듣은데다 워낙에 딜레탕트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던지라 무슨 곡인가 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 이곡이 이곡이었구나’ 하고 깨닳았을 때의 짜릿함. 지적이고 예민한 스타일의 연주. 내 스타일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뉴욕에서 들렀던 여러 재즈바에서의 많은 곡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게 뭐 연주가 좋아서였던건지 아니면 그 몇명 없고 비좁고 담배연기가 가득찼던 그 곳의 분위기가 좋아서였던건지 모르겠다. 한 이십년전 우리나라에 처음 재즈바 열풍이 몰아닥칠 때 여기저기 라이브 공연을 하는 재즈바가 우후죽순 생기고 라이브연주도 꽤나 많았던게 생각난다. 요즘은 다들 어디로 간건지 모르겠다. 이런걸 주변 어디에서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

Angelo Badalamenti – Cousins (영화 밀애 ost)

오랜만에 영화음악. 안젤로 발라멘티의 러브테마. 조엘 슈마허 감독의 1989년작 밀애에 나왔던 곡이다. 원제는 Cousins 사촌들인데 국내에는 밀애로 수입이 되었다. 요즈음의 영화들을 보면 번역하기 애매한 경우 그냥 원제를 그대로 쓰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80-90년대에는 확실히 원제와 아무 상관없이 제목을 짓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안젤로 발라멘티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블루벨벳, 광란의 사랑, 트윈픽스에서 음악을 맡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재밌는건 블루벨벳에 이제 막 출연했던 이자벨라 로셀리니가 바로 이 영화 밀애에서도 여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딸로 우리에게 더 유명한 배우. 이 러브테마는 나중에 우리나라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테마곡에 표절시비가 있던 원곡으로 더 유명하다. 암튼 좋은 음악은 다시 들어도 좋다.

칙 코리아 – Spain played by Maike

얼마전 타개한 칙 코리아의 대표곡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될 곡이 아마도 스페인이 아닐까? 미시시피의 지류와도 같은 거대한 마일스 데이비스에게서 독립해서 리턴 투 포에버 밴드를 만들고 Light As A Feather 라는 제목의 앨범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수록되어 있던 곡. 아랑훼즈 협주곡의 테마를 따와서 그 자장에서 전혀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 만의 개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곡이다. 사실은 지난 주말 비가 오는 통에 외출을 못했는데 (뭐 주말 내내 온 것도 아니지만 계속 게으르게 방바닥을 구르다가 마음을 먹었던 바로 그 순간 비가 왔었다) 봄이 더 가기 전에 이번 주는 인왕산을 가보려했는데 또 비가 내린다. 지난 주 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암튼 비오는 날 더 듣기 좋은 곡이긴 하다.

Stefan Nilsson – Towards the new world (영화 정복자 펠레 ost)

클리어파일을 몇 개 구입하러 서점에 딸린 문구점에 들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가판대에 놓인 엘레나 페란테의 신작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발견하고 냉큼 구입했다. 몇년 전 그 쪽 동네로 여름휴가를 간적이 있다. 그 때 문득 여행하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보며 여행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그녀의 나폴리 4부작을 구입했었고 그런 계기로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나폴리를 배경으로 작품을 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작품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나폴리 4부작에 이어 나쁜사랑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도 소설들이 국내에 다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한길사의 아픔다운 책 표지들도 한 몫 한 것 같다. 소설들은 분명 어둡고 침침한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책표지는 반대로 햇살 가득한 아말피 감성으로 디자인 되어있다. 묘한 아이러니. 그러고보니 빌 어거스트 감독의 정복자 펠레 또한 떠오른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잔인한 세상에서 연약한 영혼이 유리벽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 영화속에는 잔인한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마치 우리들이 어렸을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 뿌연 잿빛으로 미화되어 어렴풋이 남는 것 처럼 원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정색과 잿빛과 푸루름 그리고 노을 빛 같은 눈부심들이 뒤섞여 있는 것들. 그렇게 따지자면 한길사의 아름다운 책표지들도 다 이유가 있는걸까? 아래 동영상은 영화의 중간 어디쯤. 주인공이 언덕에 앉아 바다를 떠다니는 배들을 바라보는 가슴 미어지는 장면.

동경여관, 오즈 야스지로, 1935

오즈 야스지로의 1935년작 동경여관.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이기도 하다. 두 아들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주인공 키하치가 우연히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딸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찰나 찾아온 비극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영오즈의 이전 무성영화에서는 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만은 시각적 요소와는 별개로 음악이 내내 사용된다. 영화에서는 기이한 장면이 몇번 등장하는데 그럴 때면 음악이 삭제된다. 그리고 이 때 우린 시공간이 달라진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영화의 매트릭스 속에 위치해있다가 어느 순간 그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의 외형을 바깥에서 보게 되는 경험. 그래서 딸 아이의 죽음 이후 갑자기 사라진 여자가 다시 등장할 때 문득 이건 현존하는 실체로서의 그녀가 아니라 폐망한 일본의 원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35년이면 만주사변 끝나고 중일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즈음인데. 그 잘나가던 일본도 속을 들여다보면 황량하기 그지 없다.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맘마로마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암튼 로마나 동경이나 도시의 뒷모습은 닮아있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하나 재미난 점은 여주인공으로 당시의 톱배우였던 오카다 요시코가 나온다는거다. 오즈의 영화에는 2년전 동경의 여자라는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여러모로 다들 아는 하라 세츠코를 닮아있는 여자. 아쉽게도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환멸을 느끼던 그녀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일본 공산당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사할린으로 향했는데 우여곡절끝에 남편은 사형에 처해지고 그녀는 10년간의 노동교화형을 받은 후 소련에 남게 된다. 훗날 복권되어 잠시 일본으로 귀국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스크바로 돌아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녀가 소련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오즈의 작품들에 그녀가 계속 출연했을까 상상만 해본다.

라이카 iiig

개인적으로 바르낙 바디 중에서 두 번째로 사용한 사진기다. 나도 처음에는 RDST 라고 부르는 Red Dial Self Timer를 가진 라이카 IIIf를 사용했었다. 매우 튼튼하고 신뢰감이 가는 멋진 사진기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아무 탈 없이 잘 사용했음에도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 셔터 다이얼을 가졌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엄밀히 따져보면 반 스톱의 반 정도 될까 말까 하는 미묘한 차이일 뿐이지만 슬라이드 필름으로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원하는 대로 노출을 제어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IIIg는 바르낙을 사용한다면 놓칠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IIIg를 사용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M3와 비견될 정도로 부드럽고 정숙한 셔터음이었다. 어느 리포트를 보면 추후 M3에 사용될 부품이 많이 도입되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실제로 초기부터 IIIf 까지의 바르낙 바디들은 아무리 관리를 잘하더라도 M 바디 보다 셔터음과 충격이 좀 더 크다. 하지만 이 IIIg 만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이전 바르낙에 비해서 넓고 시원해진 뷰파인더는 IIIg에서 가장 눈에 띄게 바뀐 부분이다. 뷰파인더는 단순히 커진 것에 그치지 않고 이후의 M3 바디처럼 50밀리 프레임 라인을 보여준다. 사실 이전의 바르낙 바디의 뷰파인더들은 프레임 라인이 없으며 시야가 50mm 보다 조금 더 넓은데 촬영습관이나 안경착용 유무에 따라서 촬영을 한 뒤 필름을 보면 프레임이 실제 뷰파인더로 본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IIIg는 50밀리 프레임이 뷰파인더 안에 나타나기 때문에 무척 편리하다. 더구나 90mm 프레임 라인이 별도로 제공되기 때문에 SGVOO 같은 90mm 외장 뷰파인더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이 좋다. 덕분에 전면에서 보면 양옆으로 레인지 파인더가 위치하고 가운데 뷰파인더와 프레임 라인을 보여주는 프레임이 있으며 이것들을 하우징이 감싸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35mm 프레임 라인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꼭 SBLOO 같은 대형 외장 뷰파인더가 아니더라도 WEISO 같은 자그마한 크기의 뷰파인더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50밀리 시야만 보여주는 것은 여전한 아쉬움이다. 물론 M3 같은 경우는 뷰파인더와 레인지파인더가 일체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외장뷰파인더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기능적으로 큰 차이이지만 바르낙 같은 경우는 뷰파인더와 레인지파인더가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어차피 눈을 옮겨서 봐야 한다. 그러니 외장뷰파인더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보다 적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점을 제외한다면 유일한 아쉬움은 이전 바르낙 바디 보다 몇 밀리 조금 더 커졌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는 뷰파인더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바르낙 바디를 사용할 때의 가장 큰 즐거움은 50밀리 엘마렌즈를 침동시킨 채로 카메라 가방이 아닌 외투 주머니에도 쉽게 들어가는 작은 크기에 기인한다. 특히 II, III 같은 바디들은 매우 작기 때문에 크게 활동하지만 않는다면 양복바지의 뒷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을 정도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IIIg는 단순히 몇 밀리 정도 커졌을 뿐이지만 실제 비교를 해보면 차이는 약간 크게 느껴진다. 딱 II 정도의 크기면 가장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런 건 침동식 엘마렌즈를 사용할 때의 이야기이고, 주미룩스 50밀리 1세대 렌즈라든지 주미크론 50밀리 리지드 렌즈 같은 것을 사용할 때면 어차피 상관이 없다. 아무튼 이 라이카 IIIg는 여러 장단점을 가졌음에도 가장 최후의 바르낙 바디로서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요모조모 뜯어봐도 역시나 작고 야무진 그러면서도 든든하고 믿을만한 카메라의 전형을 보여준다. M 바디에 비해서 여전히 더 작은 크기와 더욱 클래식한 외형이 아름다운 사진기이다. 늘 함께할 수 있는 이 작고 아름다운 바르낙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Gluck – Melody from Orpheus for flute

아내를 잃은 오르페오가 비탄에 빠져 슬퍼하자 사랑의 신 아모르는 이에 감동하여 그에게 아내를 살릴 수 있는 비책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저승세계의 지배자인 플루토를 감동시키면 그녀와 함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다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상으로 되돌아오기전 까지 뒤돌아 그녀를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붙인다. 이에 오르페오는 온갖 난관을 뚫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플루토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시험을 통과한 그는 허락을 받고 드디어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기나긴 암흑의 계단을 뒤따라오는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오르페오가 변심을 했는지 의심이 들어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되고 오르페오는 무심코 그녀를 뒤돌아 쳐다본다. 이에 에우리디케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지옥으로 떨어져 죽게되고 비통한 오르페오는 자살을 시도한다.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를 보면 어찌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사로잡힌 그리스의 비극이 연상된다. 그럼에도 오페라의 2막 정령들의 춤에선 비극을 연상키 어렵고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이후 클라이슬러는 이 아름다운 합주곡의 주제 부분을 바이올린 곡으로 편곡했고 ‘글룩의 멜로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여기 삽입한 동영상의 경우는 드물게도 원곡 처럼 플룻으로 연주된 경우. 흔치않은 연주이지만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잘 표현하였다. 이 영상이 인상적인건 촬영 때문인데 일반인의 솜씨가 아닌 듯 하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마치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다.

팻 메쓰니 – Are you going with me?

스노우캣이 아직도 블로그를 연재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진짜 오래되었는데 대단하다. 내가 이십년도 더 전에 만들었던 겨울심장이라는 이름의 홈페이지 도메인은 말레이지아의 한 여대생이 자기 개인홈페이지로 가져가버렸다.사실 그 동안 만들었다가 폭파시켜버린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진짜 많은데 이 페이스북 계정만 해도 날려먹은게 다 합치면 십수번이 넘을꺼다. 전화번호도 한 열번 넘게 바꾸었지 않나 싶다. 뭐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뭔가 쌓아놓다 보면 알수 없는 무의식적 알력이 그걸 날려버리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다. 아직도 여전히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있나 보다 하하.

줄리안 브림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어릴때 음악잡지 객석에서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 30년도 더 전 기억이라 그게 줄리안 브림의 이야기였는지 다른 기타리스트의 이야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그는 어린시절부터 세고비아의 후원을 받았고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그가 50세 때 즈음이었나 스포츠카를 몰고 과속을 하다 사고가 발생했고 크게 다친 그는 연주를 그만두고 은퇴를 하고 만다. 그렇게 스페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머리를 이발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 동네 청년이 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하지만 들어주기에 영 엉망이었던 연주를 듣던 그는 그자리에서 일어나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금 연주를 시작했다고한다. 그 때 그 음악을 듣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무튼 이후 활발한 음악생활을 다시 시작해 우리의 귀을 즐겁게 해주었고. 작년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RCA에서 나온 이 음반은 93년에 발매되었는데 실제 녹음은 59년에 이루어졌다. 다들 이 곡을 연주할 때 서정적으로 연주하곤 하는데 담담한 그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그는 라벨을 연주하는게 아니라 그 자신을 연주하는 듯 보인다.

쇼스타코비치 – Symphony no. 5 conducted by Mariss Jansons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주 들었던 곡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일꺼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찮게 누나가 보던 전혜린의 수필집을 보게 되었고 그녀의 책속에 나오는 모든 책들, 영화들, 음악들을 다 보았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산물들이 다 그 책 속에서 나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녀의 글에 헤르만 헤세에게 엽서 받은 이야기가 나와서 그의 책을 다 보고 페터 한트케나 토마스 만의 소설 이야기가 나와서 그들의 책을 다 보고 뭐 이런 식이랄까. 그러다 그녀의 책 속에 나온 곡 중 하나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었다. 때 마침 집에서 엄마가 정기구독하던 객석이라는 음악잡지에 쇼스타코비치 특집이 실렸었는데 열심히 읽고 또 읽고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은 뭐랄까 무슨 스릴러 영화에서 적들에게 쫓겨서 도망치다 강물속으로 몸을 던진 주인공이 추적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 위로 길다란 빨대를 뽑아 올리고 숨을 참으며 버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빨대 하나에 의지해 숨을 유지하는 그 1초 1초의 압박감과 답답함. 신경질적인 섬세함을 느끼게 해주는데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우연찮게 그 때 구입한 시디가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EMI 앨범이었다. 오슬로 필하모니의 연주였는데 그가 훗날 더 거장이 되기 전에 초창기에 지휘한 앨범이었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녹음이 나오긴 하는데 EMI가 아니라 워너 음반으로 나온다. 어케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시 들어도 너무 좋다.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 오랜만에 듣는데도 모든 악기의 모든 음표 하나하나가 다 귀에 들어온다..